logo

메뉴
  • 역사자료실
  • 갤러리
  •   야수실기(野叟實記) 모충사현판문



    남당회맹단 의병대장 채홍국장군 야수실기 게시 연재

    野 叟 實 記


    慕忠祠懸板文


    夫 奮忠就義 實爲風化之綱領 邦國之基礎也. 郡之東二里許倡義碑閣 卽在昔龍蛇之變 義旅將贈資憲大夫兵曹判書平康蔡公諱弘國號野叟先生與九十二義士 立功殉節遺蹟也. 儼立道周 炳若日星 年久頹圮 碑獨屹然 世級滄桑 祗切行路咨嗟久矣. 先生之十一世孫東熯 尤懷悶迫 與其宗族京洌·述永·東燁·東夏協議同謀 不憚家貲之傾 碑以守舊址 閣以移建于會盟之地南塘 克致朔參望謁之誠 若非賦性孝友 慕先慕賢之至 孰能如是. 嗚呼 同殉節先生之父子兄弟叔姪 及諸賢忠魂義魄 庶幾有感應於冥冥之中矣. 儘可爲徵信於異日立言之君子歟

    歲甲子仲春上澣後學水原白賢洙 謹撰

    十一世孫東輝百拜 謹書

     

     

    모충사 현판의 글(慕忠祠懸板文)

     

    무릇 충성(忠誠)으로 분기(奮起)하여 절의(節義)를 이루는 것은 실로 풍화(風化)의 강령(綱領)이며 나라의 기초(基礎)가 되는 것입니다.

    ()의 동쪽 2()쯤 되는 곳에 있는 창의비각(倡義碑閣)은 옛날 용사(龍蛇)의 변()에 의려장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평강채공 휘 홍국 호 야수선생(義旅將贈資憲大夫兵曹判書平康蔡公諱弘國號野叟先生)92 의사(義士)와 더불어 공을 세우고 순절(殉節)하신 유덕(遺蹟)이니, 길 둘레에 엄연(儼然)하게 서 있어 해와 별처럼 빛납니다.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졌으나 비() 만은 홀로 우뚝하게 서 있으니, 세상이 창상(滄桑)의 변동(變動)을 겪는 때라, 다만 길 가는 사람의 탄식(歎息)이 간절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선생의 11세손(世孫) 동한(東熯)은 더욱 민박(悶迫)하게 생각하여, 그 종족(宗族) 경렬(京洌술영(述永동엽(東燁동하(東夏) 등과 협의(協議동모(同謀)하여 가산(家産)이 기우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는 예전대로 놓아두고, ()은 회맹(會盟)한 땅인 남당(南塘)으로 옮겨 건축(建築)하기로 하고, 삭망(朔望, 초하루·보름)에 참배(參拜)하는 치성(致誠)을 하니, 만약 타고난 성품(性稟)이 효우(孝友)하지 않았더라면, 선현을 지극히 사모(思慕)하는 것이 누가 이와 같았겠습니까?

    아아, 함께 순절(殉節)하신 선생의 부자·형제·숙질(父子兄弟叔姪)과 제현(諸賢)의 충혼(忠魂의혼(義魄)이 명명(冥冥)한 가운데 감응(感應)하심이 있기를 바라며, 조금이나마 후일(後日) 입언(立言)하는 군자(君子)에게 징신(徵信)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갑자년(甲子年) 2월 상순에,

    후학(後學) 수원(水原) 백현수(白賢洙)가 삼가 짓고

    11세손(世孫) 동휘(東輝)가 백배(百拜)하고 삼가 쓰다.



    本郡儒林敬告文


    鄕中多士 李棕九·白賢洙·高濟萬敬告于平康蔡氏宗中僉座下 竊惟龍蛇之變 貴先祖義旅將贈資憲大夫兵曺判書號野叟先生三父子 同地殉節忠義 百世之下莫不景仰欽慕 而尙欠俎豆之禮 豈不爲幽明間抑鬱乎. 所以先輩長德旣有發論 近 京府以下道內列郡章甫 公議如是鄭重 同聲贊揚 不啻若聽晨鷄 於風雨 長夜其有光於會盟舊址 爲如何哉 嗚呼 世級滄桑 今此盛禮之早晏 固宜有感 抑亦有時而然 則陶士行七百年後建祠 何獨專美於古耶. 不敢贅以蠡管之說 承準冠儒服儒之正論 壇享日字 以來月上丁選定仰告 惟願僉尊 特以照諒 俾遂德門追遠之誠 永爲奉副於多士慕義之義 千萬幸甚.

    孔夫子誕降二千四百七十五年 三月 日

    儒林 朴勝旭 高昕相 吳濟棹 金九鉉

    參奉 黃鍾允 李可樂 白南璇 曺文承

    李鍾台 吳世豐 高河鎭 李璿九

    參奉 高泓鎭 金守鉉 柳龍起 柳鍾聲

    參奉 李綱洙 宋根淑 白南碩 金秉植

    主事 高舜鎭 朴炯源 李東九 林謹鎬

    李可任 白樂允 金永來 高龍鎭

    司果 柳熙甲 黃鍾寬 宋喆洙 安秉榮

    李奎薰 李秉豐 白樂贊



    본군 유림이 삼가 고하는 글(本郡儒林敬告文)

     

    고을의 선비 이종구(李棕九백현수(白賢洙고제만(高濟萬) 등이 삼가 평강채씨(平康蔡氏) 종중(宗中) 여러분 좌하에 고()합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용사(龍蛇)의 변()에 귀 선조(貴先祖) 의려장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호 야수선생(義旅將贈資憲大夫兵曺判書號野叟先生)의 삼부자(三父子)가 같은 땅에서 순절(殉節)한 충의(忠義)는 백세(百世)를 내려가더라도 높이 우러러 흠모(欽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아직도 조두(俎豆)의 전례(典禮)가 없으니, 어찌 유명(幽明) 간에 억울(抑鬱)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배(先輩장덕(長德)이 이미 발론(發論)이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며, 근자(近者)에 경부(京府) 이하(以下) 도내(道內) 여러 고을 선비들의 공의(公議)가 이와 같이 정중(鄭重)하고 같은 소리로 찬양(讚揚)하니, 마치 새벽닭이 우는 것을 듣는 것과 같을 뿐만 아니라, 비바람 부는 긴긴 밤에 회맹(會盟)한 옛터에 빛이 있음을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아아, 세상이 창상(滄桑)의 변동(變動)을 겪는 계제(階梯)에 있어서 지금 이 성대(盛大)한 전례(典禮)의 조만(早晩)은 본래 당연히 감회(感懷)가 있으나, 원래 또한 때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도사(陶士)700 년 뒤에 사당(祠堂) 세우기를 하였다는 것이 어찌 옛날에만 있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감히 좁은 소견(所見)의 이야기를 쓸데없이 할 수 없으나, 유관(儒冠)을 쓰고 유복(儒服)을 입은 분들의 정론(正論)을 승준(承準)하였습니다.

    단향(壇享)의 날짜를 내월(來月) 상순(上旬)의 정일(丁日)로 정하여 앙고(仰告)하오니, 오직 첨존(僉尊)에게 원하건대, 특별히 조량(照諒)하시어 덕문(德門)의 추원(追遠)하는 정성(精誠)을 이루도록 하여 주시고, 영원히 다사(多士)의 의기(義氣)를 사모(思慕)하는 뜻에 부응(副應)하도록 하여 주시면 천만(千萬) 다행이겠습니다.

    종부자(孔夫子) 탄강(誕降)하신지 24753월 일

    유림 박승욱(朴勝旭) 고흔상(高昕相) 오제도(吳濟棹) 김구현(金九鉉)

    참봉 황종윤(黃鍾允) 이가락(李可樂) 백남선(白南璇) 조문승(曺文承)

    이종태(李鍾台) 오세풍(吳世豐) 고하진(高河鎭) 이선구(李璿九)

    참봉 고홍진(高泓鎭) 김수현(金守鉉) 류용기(柳龍起) 류종성(柳鍾聲)

    참봉 이강수(李綱洙) 송근숙(宋根淑) 백남석(白南碩) 김병식(金秉植)

    주사 고순진(高舜鎭) 박형원(朴炯源) 이동구(李東九) 인근호(林謹鎬)

    이가임(李可任) 백낙윤(白樂允) 김영래(金永來) 고용진(高龍鎭)

    사과 류희갑(柳熙甲) 황종관(黃鍾寬) 송철수(宋喆洙) 안병영(安秉榮)

    이규훈(李奎薰) 이병풍(李秉豐) 백낙찬(白樂贊)



    奉安祝文


    維歲次甲子四月癸未朔初五日丁亥 贈資憲大夫兵曺判書行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野叟蔡先生 伏以 昔在壬丁 島夷猖獗 宗社幾墟 生民俱傷 天將昌東 義聲四張 維公奮起 仁干義斨 齊心血盟 九十二士 旣戰且獲 七邑賴倚 衆寡甚懸 中道殉圮 聲聞于天 貤爵旌里 顧此未遑 俎豆之闕 子姓抱恨 士林齊咄 百世在後 公議不均 南塘之東 有壇突屼 厥土孔剛 厥位面陽 禮儀爰擧 筐筐始將 穆卜良辰 甲子四月 式薦精禋 庶幾歆格 尙饗

    甲子初夏上澣 后學 長澤高禮鎭 謹製

     

     

    봉안축문(奉安祝文)

     

    세차(歲次)는 갑자년 4월 계미삭 초5일 정해에, 모관(某官) ()는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행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야수 채선생(贈資憲大夫兵曺判書行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野叟蔡先生)께 감히 밝혀 고()하옵나이다.

    엎드려 말씀드리건대,

    옛날 임진·정유년에 섬 오랑캐가 창궐(猖獗)하여

    종묘·사직이 거의 폐허 되고 백성이 모두 상()하였습니다.

    하늘이 우리나라 번창케 하려고 의성(義聲)이 사방에서 일어나니

    공은 분기하여 인()으로 방패삼고 의()로 도끼를 삼았습니다.

    마음 가지런히 혈맹(血盟)92 의사(義士),

    이미 싸워서 또 사로잡아, 7 ()이 의지하여 온전하고

    적은 많고 우리는 적어 중도(中道)에서 순절(殉節)하시니

    소리는 하늘에 들려, ()을 주고 마을에 정려가 섰습니다.

    이에 돌아보니 겨를이 없어 제사(祭祀)를 못 지냈으니,

    자손이 한을 품고 사림(士林)이 모두 억울해 하였습니다.

    백세(百世) 내려간 뒤에 공의(公議)가 고르지 않거든,

    남당(南塘)의 동쪽 단()이 우뚝한 것을 보시오.

    그 땅이 크게 굳세니 그 자리는 남쪽을 향하였습니다.

    예의(禮儀)를 여기서 거행(擧行)하니 광주리마다 시작합니다.

    삼가 좋은 날을 점치니 갑자년 4월입니다.

    격식대로 정성껏 제사를 올리니 여기 내려오시어

    흠향(歆饗)하시기를 바랍니다.

    갑자년(甲子年) 4월 상순(上旬)

    후학(后學) 장택(長澤) 고예진(高禮鎭)이 삼가 지음


     

    春秋享祝文


    維歲次某年某月某日干支 後學姓名 敢昭告于贈資憲大夫兵曺判書行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蔡先生 爲世標準 維國干城 貞忠高義 百世炳明 玆値淸和 謹以 粢盛庶品 式薦精禋 尙 饗

    右 同人 謹製

     

    춘추향사 때 축문(春秋享祝文)


    유세차(維歲次) 모년모월모일간지(某年某月某日干支), 후학(後學) 아무개[姓名]가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행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채선생 (贈資憲大夫兵曺判書行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蔡先生)에게 감히 밝혀 고하나이다.

    세상을 위하여는 표준(標準)이시며 나라에는 간성(干城)이시니, 곧은 충성 높은 의리(義理)는 백세(百世)에 빛나고 밝습니다. 이에 청화(淸和)한 날을 당하여, 삼가 자성(粢盛, 祭物) 여러 가지를 가지고 격식대로 정성껏 제사를 올리니, 흠향(歆饗)하소서.

    위와 같은 사람이 삼가 지음.

     


     

    慕忠祠講堂契序


    夫契 契合同志 尙德義而理財用也. 易曰 利用安身 以崇德也. 傳曰 德者本也 財者末也 安身崇德之事 豈有本未 相資而有始有終乎. 嗚呼 世値蔑貞 三綱爲弁髦 凡我餘存士類 彛性罔墜 以其有尊賢慕忠之禮 而禮必有誠 誠必由物 故今此壇享 禮畢各以一緡金額 刱設契案 竊伏念僉君子 相悅之情 不後於人 則互相勸勉 無或愆違於財用 返濟有所補益於德義修整 使後仍·後學 世講契事於同盟舊址 不亦美且善乎哉.

    孔夫子誕降二千四百七十五年甲子四月五日

    上丁后學延安李棕九謹書


     

    모충사강당계의 서문(慕忠祠講堂契序)

     

    무릇 계()란 같은 뜻으로 제()를 모아, 덕의(德義)를 높이고 재용(財用)을 다스리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는 몸을 편안하게 하여 덕()을 높이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서전(書傳)에 이르기를,()이란 근본이며, ()는 말엽(末葉)이다.하였으니, 몸을 편안케 하여 덕()을 높이는 일에 어찌 본말(本末)이 있겠는가? 서로 보탬이 되면서 비롯함이 있고 끝남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아, 세상에 곧은 것이 없어져 삼강(三綱)이 변모(弁髦)로 되었는데, 우리 살아남은 사류(士類)는 모두 떳떳한 본성(本性)을 실추(失墜)시키지 않음으로써 그 존현(尊賢모충(慕忠)하는 전례(典禮)가 있으며 전례(典禮)는 반드시 성의(誠意) 있게 하며 성의(誠意)는 반드시 물질(物質)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단()의 제사(祭祀)를 끝내고 각각 일민(一緡)의 금액(金額)으로 계안(契案)을 창설(刱設)하는 것이다.

    가만히 엎드려 생각하건대, 여러 군자(君子)께서는 서로 기뻐하는 마음이 남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니, 서로 권면(勸勉)하여 혹시라도 재용(財用)의 반제(返濟)에 있어서 잘못됨이 없도록 하시고 덕의(德義)에 보익(補益)되는 바가 있도록 하며 수정(修整)하여 후손(後孫후학(後學)으로 하여금 대대로 동맹(同盟)한 옛터에서 계사(契事)를 강습(講習)한다면, 또한 아름답고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공자(孔子)께서 탄강(誕降)하신 지 2475(갑자, 1924) 45

    후학(后學) 연안(延安) 이종구(李棕九)가 삼가 쓰다.


    목록